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는 과정은 명확하지만 인증받는 절차는 사기에 가깝다.
과학계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머리를 굴려가며 모형을 짜맞추다가, 실제 구조에서 겉과 속을 뒤집은 형태의 모형을 만들어서 발표했는데, 당연히 화학적으로 말이 되지않는 불가능한 형태였다. 이 자리에 당시 결정학자이자 X선 회절 전문가인 로절린드 프랭클린도 있었고, 그녀는 이 조잡한 망작을 대놓고 저격했다.(...) 한편, 왓슨과 클릭은 그들의 고용주에게 하라는 일은 안하고!! 까였으며, 결국 DNA 구조 관련 연구를 중단해야했다. 참고로, 이들은 첫 망작 모형을 만들 때, 자체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없고, 다른 학자들로부터 데이터를 얻을 수도 없어서 둘이서 끼워맞춰가며 화학적으로 당연히 맞는 구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면, 적절한 구조가 나오면 누군가가 증명해주겠지(...)란 발상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사기꾼이다....)
왓슨과 크릭은 DNA가 분명 이중나선 구조일 것이고, 첫 모형에서 좀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안 그래도 프랭클린에게 처절하게 저격당한적도 있겠다, 확실하게 입증하려했는데, 자신들이 처한 환경상 제대로된 연구는 불가능했다. 이 와중에 왓슨과 크릭은 X선 회절 사진 자료들을 얻고 싶어했으나, 당시는 냉전이 한창이었고, 함부로 다른 대학을 방문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추측을 입증하지 못해 미쳐가고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프레드릭 윌킨스가 일하던 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프랭클린이 진행중인 X선 회절 사진 연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빌며 찾아갔는데, 이때 프랭클린은 부재중이었다. 그런데, 동료였던 윌킨스가 뜬금없이 프랭클린의 허락도 없이 미발표된 연구자료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DNA의 X선 회절 사진이었고 이건 왓슨과 크릭이 정정한 DNA 모형이 정확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데이터에 목말랐던 왓슨과 크릭은 제발 이 자료 공유해주세요. 공동 저자로 다함께 이름 써넣읍시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이랬으나 이 자료는 프랭클린의 것이니 윌킨스는 당연히 거부했다. 게다가, 윌킨스는 내성적인 인물이었기에 프랭클린과 왓슨-크릭을 연결해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왓슨과 크릭을 씹어버린다. 공동 저자 요청이 씹힌 왓슨과 크릭은 별 수 없이 갖고 있던 신문지에 자료를 급히 직접 손으로(!) 그려 옮긴다.
누가 손으로 그린 데이터를 들고 있는 논문을 퍼블리쉬(출판)해주나? 별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던 왓슨과 크릭은 네이쳐 편집장이었던 학장에게 부탁하여 결국 딸랑 3장짜리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논문에는 직접 자기 손으로 그린[2] DNA 구조, 그것도 무슨 화학물질이 들었는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선만 그려놓은 것 말고는 아무런 그림도 없는, 그러니까 데이터는 1g도 안 들어간 눈물나는 논문(그것도 레퍼런스마저 거의 없는)을, 아…그러니까 우리가 대단한 걸 발견했는데요, DNA 구조란 게 대충 이런 것 같슴당. 근데 데이터는 없…… 하며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논문과 논문집, 같은 호에 모리스 윌킨스의 논문과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논문이 같이 실렸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3페이지 짜리 논문에서 "DNA구조가 이랬단 말인가!" 하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가, 바로 뒷 페이지에 실린 윌킨스의 논문과 프랭클린의 논문을 읽고 그 데이터와 결론을 왓슨과 크릭의 구조 예측으로 설명하면 완전히 간결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왓슨과 크릭은 이런 효과를 노리고 무리해서라도 3장짜리 논문을 프랭클린이 논문을 내던 시점에 맞춰서 급하게 낸 거였고[3] 당시 DNA를 X선 회절 사진으로 연구하던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왓슨과 크릭은 자기네 예측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후속 논문을 제출했고, 이 논문에 X선 회절 사진을 제공한 윌킨스를 공동저자로 끼워준다. 그 논문은 실로 예술이었는데, DNA가 이중 나선이며 A-T, G-C 상보적 결합을 통해 한 가닥만 있어도 다른 가닥을 그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복제도 가능한 구조라는 것을 모두 멋들어지게 밝힌 논문이었다. 역시 인생은 한 방 이 공로로 왓슨, 크릭, 윌킨스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1962년에 수상한다. 왓슨과 크릭의 첫 네이처 논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profiles.nlm.nih.gov/ps/access/SCBBYW.pdf
하지만,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58년에 37세에 난소암으로 요절했기 때문에 수상하지 못 했다. 노벨상은 이미 죽은 사람한테는 수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공로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그 공로가 재발견됐을 때 성차별 및 업적을 가로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 프랭클린이 살아있었어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암울한 추측도 많다. 프랭클린은 자기 혼자서 데이터를 모두 정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해 준 그 논문에서 제 4 저자로 실렸고 노벨상은 한꺼번에 3명까지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보다 테크닉이 떨어져 깔끔한 사진은 찍지 못하던 윌킨스는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적극적으로 왓슨과 크릭에게 지원해줘 제 3저자로 실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왓슨이 노벨상 수상 이후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프랭클린 및 윌킨스의 업적을 조명시켜주었고, 단순히 여류과학자 중 하나이며 괴짜에 불과했던 프랭클린의 업적이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책에서 상세하게 자신이 도움받은 것들이 나와있었고 프랭클린이 사후였지만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사람들이 읽으면서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업적이 왓슨과 크릭보다 훨씬 높았고, 세간에서 그 두 사람의 연구를 사실상 도둑질하여 재구성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과 추궁, 비판을 죽을 때까지 들어야 했으며, 이들은 죽기 전까지 끝없이 해명과 자기변호를 해야만 했다 (프랜시스 크릭은 2004년에 사망했다). 사족으로 왓슨은 이후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드러나 2007년 무렵 학계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2014년엔 자신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론 예상가 보다 높은 53억에 낙찰되었고, 대인배 낙찰자가 메달을 왓슨에게 곧장 돌려줌으로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낼 뻔한 위기에서 구해졌다. 지금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과거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관련기사 2
DNA 구조 발견 이후 왓슨과 크릭은 한 바이러스의 구조를 밝혀내는 추가 공동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왓슨은 분자생물학 교과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을 쓰는 학교가 많다) 를 저술하기는 하였으나 연구하는 과학자보다는 행정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장, 휴먼지놈프로젝트 제창 등등). 크릭은 DNA → RNA →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는 센트럴 도그마의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그와 관련한 지속적인 연구에 매진하여 분자생물학계의 거두로 자리매김한다. 사실상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만든 것은 크릭이라고 봐도 좋다. 크릭과 왓슨이 맞을 거 같다
한편 화학자로서 화학결합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라이너스 폴링 역시 DNA의 구조를 알고자 하였는데, 폴링은 삼중나선 형태라고 예측하였었다. 왓슨과 크릭은 첫 모형에서 염기들을 밖에 내놓는, 화학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삽질을 했는데, 중요하고 자주쓸 염기를 왜 굳이 안에 박아두겠냐는 생각에…폴링의 삼중나선 예측도 비슷한 류의 삽질이다. 그러나 이중 나선 구조로 밝혀지고 나자 진심으로 축하를 하며 '아름다운 구조'라고 극찬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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