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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영화) 성경과 유사점

Preserved_Flower ♡ 2016. 7. 15. 09:17

곡성(영화) 성경과 유사점


효진이는 못 먹던 생선을 갑자기 먹기 시작하고 

외지인은 생선을 낚기 위해 미끼를 꿴다. 

생선이 기독교적 심볼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기독교적 색채를 느끼는 해석도 있다. 

다만 못 먹던 음식을 갑자기 폭식하는건 

전통적으로 귀신 들림 증상으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약간 다르게 해석했는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가 육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나서 

대접한 것이 생선이고, 예수가 그것을 먹는데, 먹는다는 뜻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이 영화에서 생선이라는 것은 

초월적 존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실과 관련이 있고,

성경에 있는 레퍼런스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효진이 생선을 먹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적인 상징물인 생선'을 먹는다는것에 주안점을 주고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생선을 먹는 행동' 자체가 

루카 복음서에 레퍼런스를 둔 것이고 

그것에 주안점을 두고 해석한 것.

(또는 영화의 첫장면에서 외지인이 미끼를 끼우는 모습을 생각하면 

효진(생선)이 미끼를 물었다라는 상징적인 의미일수도 있다) 



반면 '새'는 대놓고 라고 싶을 정도로 영화 내에서 악마적인 이미지로 활용된다.

처음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새 둥지 모양의 제단,

종구네 집의 장독대에서 발견된 까마귀 사체, 

일광이 무명을 만난 후 겁에 질려 거처로 복귀했을때 안으로 던져진 까마귀 등. 

종구가 양이삼 부제와 이방인을 찾아갔을 때 이방인의 식사 그릇을 보면 

닭발인지 뭔지 모를 새의 발이 수북하게 담겨 있다. 

일광의 굿판에서는 일광의 손에 들린 흰 닭과 

이방인에 손에 들린 까만 닭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토마스 모티브는 나중에 CG로 추가한 것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선명한 존재를 관객이 다중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를 보고 가톨릭 부제가 "주여"라고 할 때, 

"주여"를 과연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관객이 더욱 극명하게 느끼도록 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늘에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앞에 있는 대상인지, 

보는 그대로 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를 수도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더 차이가 나도록 하게 하고 싶었다.

 -나홍진-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복음서 20장 24~29절 


토마스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나자 토마스는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처를 만지게 해 달라고 그래야 믿겠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가 손과 발의 상처와 옆구리의 상처를 만지게 허락하고 

나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외지인은 자신의 손과 발을 보라고 하며 자신을 만지라고 하는데 

외지인의 손에는 구멍이 난 듯한 상처가 있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마르코 복음서 : 14장 72절-


닭이 세 번 울면 귀신이 함정에 걸린다고 하는 장면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욥기 1:7-


종구가 외지인에게 곡성에 온 이유가 뭐냐라고 묻자 

한 번은 '여행'이라고 대꾸하고 

나중에는 대답을 해줘도 너는 믿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질병과 죽음을 창궐하게 만드는 게 악마의 목표이다.


1. 종구는 외지인에게 경고를 남기는데, 곡성에서 나가도록 3일의 기한을 준다. 

그리고 무명에게 쫒기다가 종구의 트럭에 치여 죽고 다시 부활한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죽고 나서 3일 만에 부활한다.


2. 위에서 일광이 장승을 말뚝으로 박는 모습을 

수호신을 약하게 한다는 역 굿이라는 말이지만

다르게 보면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으로 박는 모습과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광이 장승을 말뚝을 박으면서 동시에 외지인이 고통스러운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으로 박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외지인이 손이 구멍을 난 듯한 모습도 포함 할 수 있다.


3. 요한 복음서 8:52~59 예수가 유대교 지도자들 간의 논쟁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라고 말하자, 

분노한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한다. 

곡성의 악마 또한 절벽에 떨어지고 온갖 수난을 겪는다. 

예고편에선 성경의 장면처럼 무명이 돌을 집어 들어 올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4. 죄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무명은 종구에게 돌을 던지며 등장하고, 

포스터의 천우희도 손에 조약돌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무명이 "죄없는 자"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외지인이 악이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5. 이러한 성경 및 기독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관객이 제일 의문스러워했던 대사인 무명이 말한 아이 아버지는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인 죄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어느 정도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자신의 딸이 왜 고통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묻자 

무명은 종구를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아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게다가 최소한 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턴 종구는 남을 의심하고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이 말은 육체적인 아버지의 딸의 관계가 아니라 

성서에서 말하는 아버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정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는 초월적인 존재이고, 

해석에 따라선 아버지를 악마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으로 따르면 죄는 아버지의 죄로 딸이 살인을 하게 되었다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일본 외지인은메시아이며 

성서의 예수가 악마일 수도 있고 악마가 예수를 흉내 낼 수도 있다는

2가지 의미의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낫과 손전등을 들고 온부제 이삼은 오 주여라는 말을 하는데

의심과 믿음에 따라서 2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게 만들었다는 

감독 인터뷰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구의 이야기와 이삼의 이야기는 사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삼은 이삼대로 자신에게 혼란을 주는 어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종착지에서 만난 그 인물이 특정 형상으로 변하면서 

메시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린다' 마치 악마가 예수의 흉내를 내며 

예수의 제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이삼이 '주여'라고 읊조리지 않나. 

이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를 진짜 악마로 보고 주를 찾는 것, 

아니면 예수가 악의 형상을 한 것 뿐이라고 믿고 경배하는 것,

관객도 함께 의심한다. 

관객에게 선택권을 줬다

 -나홍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