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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데이터/세상과의 소통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는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1892년 2월 22일 ~ 1950년 10월 19일)


산문 작업을 할 때에는 낸시 보이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Edna St. Vincent Millay.jpg



“내 초는 양쪽에서 타 들어온다. 

/ 그러나 물론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겠지.

/ 그러나 아, 나의 적들이여, 그리고, 오, 내 친구들이여

/ 이 불빛이 지금은 아주 아름답지 않은가!

 (‘첫 번째 무화과’1920) 

영국의 문호 토마스 하디는 미국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을 꼽자면 

우선 하늘을 찌르는 듯한 마천루와 함께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Edna St. Vincent Millay, 1892-1950)의 시들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그녀는 20세기 전반, 

그 중에도 특히 ‘재즈 시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핏 제럴드가 지은 말로 

벼락부자들이 마구 출세하여 

매일 흥청망청 파티를 열고

재즈에 맞춰 춤을 추며 지내던

1910-1930년 사이의 타락한 시절을 말한다. )



에 미국 내외에서 널리 알려져 주목을 받던 시인이었다. 

그녀는 공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으며 파티에서 취하면 옷을 마구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말하는 소위 

‘스키니 딥(Skinny Dip)’ 원조인 셈이다. 

동성이나 이성을 막론하고 

마음에 들기만 하면 관계를 맺어 

무수한 염문을 뿌렸다.

19세기 식의 기존 가치관을 무시하고 

자유 연애를 신봉한 ‘신시대 여성’의 전형이었다.


당시 ‘신시대 여성’이란 ‘재즈 시대’를 전후로 

서양에 등장한 여성해방운동의 결과 유행되었던 풍조로 

남자에게 구속이나 괄시를 받지 않는 

강인하고 정열적인 여성들을 말한다. 


이미 영국에서 버지니아 울프나 버네서 벨이 시도했던 것처럼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는 여성들을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이를 몸소 실천한 여성이었다.


그들은 당시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해서 ‘flappers’라고 불렀다. 

후에 한국에 전해져서 ‘후라빠’로 불렸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는 메인주 로클랜드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학교 선생이었다. 


그러나 밀레이가 8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수입이 신통치 않은 데다가 

낭비벽이 심한 아버지를 버리다시피 이혼한 다음 


세 딸을 데리고 메인주 캠튼이란 시골 지역으로 옮겨갔다.


어머니는 간호사로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가운데 딸들을 길렀다. 


그녀는 자주 야간 근무도 자청했다.


그래서 세 딸들 중 맏인 에드나 밀레이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음식을 장만하고 빵을 굽고 

집을 치우며 옷을 문질러 빨았고 

터지고 닳은 곳을 기우는 등 억척같이 두 동생을 돌보는 

대리모 역할을 감당했다. 


빨래를 하면서 옷을 문지를 때에는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친척들의 도움은 거의 바랄 수 없는 처지였다. 

모녀들이 캠튼의 험한 지역에 자기들 손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데 토요일 어느 날 밤 

일단의 술에 취한 제재소 목공들이

장성한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고 해서 

처녀 아이들을 강간할 목적으로 

문을 부수고 침입하려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딸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 

음악을 가르치면서 각자의 독립성을 키워주었다.

밀레이는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성적이 우수했다. 


그녀는 연극 반에서 연기를 했고 피아노를 쳤으며 교내 문학경연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녀가 ‘재생(Renascence)’이란 시로 전국 경연대회에 출연했을 때 4등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상을 탈 때 관중들이 너무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응원한 나머지 

1등상을 탄 학생은 수모를 느껴 부끄러운 나머지 직접 상을 타러 연단에 나갈 수 없었다. 

졸업반이 되어 다른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는데 

밀레이는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 YWCA 교육 책임자가 

그녀의 시를 읽어보고는 

뉴욕에 사는 한 여유 있는 부인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주선해 주어 배써(Vasser) 라는 

일류 여자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