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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데이터/세상과의 소통

烏瞰圖

烏瞰圖

이게 무슨 소리야!!!
오감을 총동원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 국문학도 학살의 끝판왕 문과계의 밀레니엄 문제 그나마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는 그리고리 페렐만이 풀었기라도 했지... 한자 번역만 된다면 이해가 좀 될텐데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이상의 난해시. 원래 30편을 계획했으나 독자들의 항의("내용을 알 수가 없다")로 15편만 연재되었다. 서양에는 비슷한 포지션의 문학작품으로 피네간의 경야가 있다고 카더라. ㄹ어나 AAAAAAAA! 뺨친다



현재 한국 난해시의 최고봉으로, 지금까지도 아무도 정확하게 뜻을 해석한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심지어는 이게 해석이 가능하기는 한지, 뜻이 있기는 한건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난해한 작품이다. 위에서 말했듯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지금 전문가들도 제대로 해석 못하는 판에 일반인들은 오죽했으랴...)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될 정도였다. 이 시는 게재 첫 날부터 파문을 일으켰고, 조선중앙일보는 "이런 시를 실을 거면 폐간해버리라"는 항의전화와 편지가 쏟아졌는데 15편까지 꿋꿋하게 올렸다. 참고로 당시 이상에게 시를 쓸 것을 추천한 사람은 당시 학예부장이었던 이태준이었고 최종적으로 게재를 승인한 사람은 남의 비난은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던 여운형 사장이었다.

이 연작들에는 일본어투가 매우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여기에 실을 땐 그나마 순화되어 옮겨졌지만, 본 텍스트에는 외래어, 문법, 전문용어 등이 거의 모두 일본어투로 쓰여있다.예외적으로 그렇지 않은 몇 작품만이 그나마 교과서 등에 소개되고있다. 물론 이것들은 근대경험의 이질성을 강조하려 의도된 것으로, 기본문법은 철저히 한국어에 기대고 있으니, 이 연작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어 문학 작품이다.




이로써 한국 문학은 대단한 실험으로 진일보를 이루었다는 평을 듣게 되지만 그만큼 문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골치께나 썩게 되었다. 난해시 중에서도 최종보스급. 사실 이런 게 15편 더 있었으면 국내 국문학자들은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2009년 상반기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이자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권영민 교수가 이상 전집을 내면서 새롭게 해석한 바 있다. 

다만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나 이상의 평소 작품 등을 볼 때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그려낸 시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제목에서부터 이를 잘 드러내는데, '조감도(鳥瞰圖)에서 오자가 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까마귀라는 새의 이미지와 획 하나가 부족한 불완전한 단어를 통해 암울한 분위기와 불안감을 일부러 형상화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설이다. 오감도 시 제1호를 예로 들면 반복되는 13과 '무섭다고 그리오', 막혀있는 길 등이 바로 그런 소재들이다. 또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점도 이를 드러낸다.[3] 그냥 아무 의미없이 막 쓴 것 같다
문학계에서는 조감도의 오자가 난 것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구체적인 설명으로는, 당시 활자공이 오감도를 최초로 인쇄할때, 鳥와 烏를 착각하여 오감도로 인쇄하였다. 활자공은 평소 이상의 이상한 인간상과 성격을 잘 알고있기에 뒤늦게 후회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이상이 찾아왔다. 활자공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떨었으나 이상은 활자공을 얼싸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내는 것이 아닌가? 이상은 자신의 시가 오감도라는 이 일탈로 완성되었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생전에 이 작품을 썼을 때는 비평과 악평만이 가득했지만, 현대로 넘어 오면서 이상의 시는 재평가받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오감도가 서 있었다. 갖가지 인용과 패러디를 통해 오감도(특히 시 제1호)는 널리 알려졌고, 국내 시 역사상 과거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어쩌면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는)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움직여 써내는 '자동기술법'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2000개나 쓸수 있었구나

참고로 이 시가 독자들의 항의에 의해 연중될 당시 작가의 변이 있는데,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들보다 수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인가. 모르긴 해도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독자들도 좀 뉘우쳐라.
(나는) 여남은개쯤 써 놓고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놈들과는 다르다. 2000개에서 30개를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동안의 일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놓았더니 아랫것들 야단에 뱀 꼬리는 고사하고 쥐 꼬리같은 결말도 못 내니 서운하다.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이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 형이 내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다.

鐵 ― 이것은 내 새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屈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 ― 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 ― 다시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고 우선은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정신병이나 고치겠다.